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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꿈』

도서관에서 처음 이 짧은 제목을 눈앞에 두었을 때는, word와 dream의 의미일 것이라고 무심코 짐작해 버렸다. 그 두 단어는 정말 잘 어울리니까. 세상에는 입 밖에 말로 내어지지 못한 꿈들이 참 많을 거라고, 문득 멋대로 짐작해 본다. 나에게도 꽤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으로 열어든 책 속에는 말 한 마리가 콧구멍을 푸르릉, 거리며 그대로 활주로를 경쾌한 말발굽 소리로 울리고 있었다. 마치 탑스타 가수가 무대를 '장악했다'는 표현이 어울리듯이.

 

말과 꿈

그 말은 내가 딱 '꿈'이라면 본디 이런 것이어야지, 하며 품고 있던 이미지의 원형이었다. 그것은 저돌적이었고, 관능적인 근육의 월등한 우량함을 자랑했으며, 절대적인 '주인공', 딱 그것이었다. 2, 3위 경주마들과 엎치락 뒷치락하는 경쟁관계를 두고, 이러한 '서사'는 나를 저해하는 모래주머니가 아니라 그저 술자리에서 풀 승리의 썰을 풍성하게 채워줄 장식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듯, 너무나도 큰 격차로 1위를 차지해 버렸다. 극적인 연출을 위한 반전은 이 말의 유능함 아래 머리를 숙이고 어딘가의 쥐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린 듯했다. 나는 이런 걸 으로 삼고 싶었다. 알파의 무엇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한. 그 존재만으로 사족의 필요성을 압살하고 감히 다른 이들 앞에서 당당하게 찬사를 수집할 수 있는, 그런 정복감 넘치는 무언가.

 

  "곧 트로피를 가져다줄 테니 까불지 마. 그냥 자리만 지키라고. 녀석의 심장이 그렇게 읊조리면 저는 녀석을 믿고 기다리면 되거든요."(p.59) 그 말은 결승선을 통과하며 코피를 흩뿌렸다. 생명을 작열시켜 산화하는 형태의 '초월'을 이루어낸 것이다. 관중들은 이 모습을 지켜보며 전율한다. 강함은 우러러봄을 불러일으킨다. 생명의 한계선을 밀어붙이는 영토확장적인 강함은 그 자체로 경제적 가치의 저울질을 부수고 무한대의 보배가 된다.

 

  하지만 이 말은 불어난 도랑의 흙탕물 속에서 삶의 마지막 공기를 내쉬었다. 그 전에는 공항의 활주로를 마음껏 질주하기 위해 총합 몇 백, 몇 천 시간 분의 타인의 자유를 자신만의 자유를 성사시키기 위해 끌어다 쓴 셈이었다. 그전에는 경기 중 사고로 무릎 분쇄골절 부상을 당하며 말로써의 긍지를 잃어버리고 말았었다. 수술 후 예전처럼 달릴 수 없게 된 말은 매부리코 마부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어쩌면 그 원망스러웠다던 눈빛은 그저 마부의 죄책감에 인한 아지랑이성 효과일 수도 있다. 쨋든 여기서 중요한 건. 글쎄, 무얼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마냥 정액 한 팩 당 보석에 가까운 가격의 부를 안겨주던 이 말은 이제 그 눈부신 클라이맥스의 몸값을 달성하고 내려와 목장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다 조용히 죽을 예정이었다. 그만큼의 성적도 못 낸 다른 말들은 그저 도살되어 누군가의 접시 위에 올라가거나 아니면 그 접시 위에 올라갈 존재의 접시 위에 올라갈 뿐이었다. 여기서 나는 허탈감을 느꼈다.라고나 할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 나는 꿈을 펼치려고 하는가? 그것도 거대한 꿈을. 아니, 이건 그냥 청년세대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탓에 얼버무리는 툴툴거림 중 하나같은 게 아니다.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 좇음의 궁극적이고도 근본적인 가치는 모든 순간 마음속에 숙지하고 있어야 언제건 목표성 질주를 위해서 동력을 뽑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말과 꿈」에 나오는 주인공 남자는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는 그저 플레인한 인물이다. '애초부터 약속일 수 없었던 일방적인 약속'(p.112)을 지키려 '현실적인 고충과 불안을 내팽개친 채'(p.23)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달려간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데다 전방의 교통사고 건과 겹쳐 흡사 거북이만도 못한 속도로 느릿느릿 진보해야 했다. 이 속도감이, 딱 나같았다. 말로는 キラキラ、온갖 반짝이는 이 세상의 눈은 다 갖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주제에, 나는 내 꿈이 너무 커다래야 할 것을 알아서 정작 그 1보를 내딛기를 두려워하는 요즘을 살고 있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꽤나 힘이 들었던 것 같다. 다른 어떤 형태의 '파이팅'이라든지, 그러니까 '내일은 그 반짝임을 되찾고 희망차게 나아갈 거야'라는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인 결론으로 무조건 이어지지 않아도 되는, 그저 담백한 형태의 고백, 그리고 그 자체의 인정. 나는 꿈이라는 단어에 너무나 큰 기대와 책임을 걸고 있다. 그에 반해 쉽사리 발을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저 바라보는 형태로 이 순간의 찬란한 동경이 굳어지기만을 바라는 이런 모순된 나 같으니라고.

 

  활주로로 나아가려는 남자의 시도는 실제로 그 일부라도 실행에 옮겨지기는커녕 머릿속 시뮬레이션을 통해 얄팍한 깊이로 돌려지다가 승무원의 '화장실이라면 나중에 가'달라는 요청 한 마디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사실 산산조각이라는 말도 과분할 것이다. 뭔가 대단하게 단단한 무언가가 있어야 그것이 '부서진다'는 이미지가 성립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냥, 휴지 한 장이 팔랑팔랑 떨어져 변기물에 녹아버렸다 할 만한, 딱 그 정도 비유가 적절한 듯하다. 어쩌면 사람은,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이 남자와 같이 스스로가 창조한 어떤 특별한 의미를 좇아, 설령 그 의미 내지 가치가 허구적인, 지극히 개인적인, 비이성적인 무언가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의 입김을 무시하며 귀를 닫고 뛰쳐나가는 그 짧은 일탈에서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의 꿈을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되려나. 좀 비관적인 말이었던 것 같기도. 취소할란다.

 

 

「퇴거」와 나중에 함께 묶인 다른 산문들

하지만 이런 절망적인 고민에는 그 선행자, 선두자가 있던 것 같다. "글을 쓰지 않으면 내 한계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조차 없다."(p.) 그러니까 나는 치밀하게 베를 짜는 아라크네와 같이 집요하게 글쓰기 기계와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옥신각신 발생시켜 가며 그 총체를 완성품으로써 세상에 내놓을 뿐이다,라는 마인드. 그는 이 행위를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을 과격하게 진동시켜 뭘 어떻게 해보려는 것'(p.208)이라 이름 붙였다. '혼자 쓰고 혼자 읽는 텍스트를 자주 생산하기. 그런 와중에 가끔 혼자 쓰고 둘이 읽어도 좋을 소설을 생산하는 사람'(p.157)으로 스스로를, 스스로의 작업을 정의 내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 아아, 그는 소설 쓰기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다. 대상 그 자체를 사랑하는 거다. 그 대상을 사랑하는 내 모습을 좋아하는 것과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불행히도 나는 후자의 사람에 아직 더 가깝다. 보여지는 모습을 줄곧 신경 써왔고, 나를 증명하는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하지만 나는 지금 굉장히 우스꽝스럽다고 할 수 있다. 주변을 과도하게 신경 쓴 나머지 나 자신은 그 주변의 여집합으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좁은 공간에 갇혀 버린 것이다! 원래 주변 신경 안 쓴다고 떵떵거리는 사람이 제일 주변을 신경 쓰는 것, 알지. 그래서 나는 여기서 머뭇거리는 나 자신이 싫어진다. 펜을 들어라, 지희야. 고등학교 때, 그저 그 노트북 화면 속에 푹 적셔져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때의 희열을, 가치의 보배로움을, 심장을 쥐여 잡는 그 귀여움을 다시 너의 온몸에 물들여라! 부디. 

 

  😊 응, 부디.

 

 
말과 꿈
시작되지 않았으나 어디선가 반복될, 잿빛 환영으로 그리는 세계에 대하여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는 기획이다. 그 열여섯 번째 작품으로 양선형 작가의 『말과 꿈』이 출간되었다. 『말과 꿈』은 2014년 등단 이래 꾸준히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양선형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스스로를 ‘불친절한 작가’라 말하는 양선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수하고자 하는 소설에 대한 깊은 고집을 담았다. “나는
저자
양선형
출판
자음과모음
출판일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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