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인스타그램이 문제였다. 자신의 삶이 아닌 걸, 자신의 분수에 안 맞는 걸,
자신의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그 가짜 세상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는 가장 처음에 읽은, 진호와 진희의 이야기였다. 이 세상에는 완벽해야 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완벽하지 않아도 되니 사고만 안 치면 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걸까. 완벽이라는 게, 참 그렇다. '관성'이 적용된다. 한번 완벽해지는 순간, 그걸로 칭찬을 받은 순간, 그 성실하고 착한 아이의 이미지로 자신을 칭칭 포장하는 순간, 강박적인 완벽주의자 성향의 사람은 더 이상 그 갑갑한 붕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벗어나면 안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런 '월담' 내지 '반발'은 내가 정의내리고 내가 원하던 진정한 '나'가 아닌 것만 같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경험이랄까. 그 원 밖으로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말 오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완벽'이란 단어를 이 글에서 최대한 많이, 자주 사용해 보려고 한다. 그러니까 그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대답에 조금이라도 더 근접하고 싶었으니까. 음, 나의 개인적인 역사에 따르면, 내가 최선을 다할 때마다 주변에서 "역시 ○○이야~" 라고 거듭하여 돌아오는 대답의 굴레 속에서, 스스로를 그 틀 안에 어기적 어기적 미어넣는 것. "역시 ○○이야~"가 앞에 N번이나 반복되었어도 그 다음 N+1번째에 들리는 말이 "어라, ○○가 왜 이러지⋯." 가 되면 처참하니까. 비굴해지니까. 나 자신이.
그래서 나는 가끔씩 내가 스스로 원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했다. 무언가를 지속했고, 붙들고 놓지 않았으며, 나의 진실된 감정에 반하여 억지로 무언가를 하기도 했다. 표정은 개썩은 채로, 누군가가 이 표정을 읽고 "그래 ○○이 너무 수고롭게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있지~ 알지 알지~"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정말 수동적인 공격성이 따로 없다. 인정해 주지 않으면 밥상을 뒤집어 엎겠다는 마음가짐이라니, 중2병이 뒤늦게 찾아온 것도 아니고.
방탄소년단은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자 하나 둘 셋 하면 잊어
슬픈 기억 모두 지워
서로 손을 잡고 웃어
그래도 좋은 날이 앞으로 많기를. 훨씬 더 많기를. 긍정적이진 않았던 말미를 두고 해당 직장에 대한 기억을 통째로 구리게 여기고 마는 건 초짜다! 루저다! 나는 성장해야지, 성인이니까. 첫번째 직장에서는 사람들 간의 진심어린 애정관계가 가능한 거구나, 하고 깨달았다. 냉혹한 사회 속으로 걸어가기 앞서 그런 안온한 핫팩같은 기억은 내게 큰 자산이 될 것 같다. 타인을 진심으로 대하면 당신도 나를 진심으로 대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알아차렸으니까. 두 번째 직장에서는 사장에게는 미안하지만 회사의 앞길에 대해선 그렇게 큰 걱정 내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내가 맡은 앱 개발 일에 하루종일 미친 듯이 몰두해 정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일을 즐길 수 있었다. 내 생에 그렇게 많은 타자를 쳐보긴 처음이었다. 쏙 빠져 있었다! 앞으로 직장을 갖는 다면 이렇게 중독되어 일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비전이 그려졌다. 그런 점에서 참 사랑스러웠던 경험이었다. 이 좋은 점들만 쏙쏙, 금붕어를 채로 건지듯 건져내어 내 주머니 속에 넣고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나를 믿자. 내가 내린 선택을 지지하자. 나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결국 나일 수밖에 없으니까. 이렇게 된 김에 수많은 '지희'들이 등장하는 대군단의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졌다. 힘들 때마다 보고 의지받을 수 있도록. 영원한 시간대 속 무수한 '나'가 나를 쳐다보며 응원하고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사실이 나려 쌓이는 눈송이처럼 포근하게 나를 덮어줄 수 있도록.
❄️
- 저자
- 김종완, 김현, 송재은, 이종산
- 출판
- 시절
- 출판일
- 20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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