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음을 모두 주었던 이 프림 빌리지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끝이 결코 오지 않기만을 바랐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도 여기에 내 마음이 아주 오래토록,
어쩌면 평생동안 붙잡혀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작가의 말에서 본 문구가 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지속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고. 나의 이 책에 대한 기억은 중간의 이 몇 페이지에 옴짝달싹 못하고 꼼짝없이 붙들려 있다. 눈을 감아도, 떠도, 그 장면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진다. 붉고 뜨겁게 타오르는 숲, 그 연기 자욱한 가운데 하나둘 쓰러지는 나무들, 기둥들, 사람들. 불길이 솟구치는 와중에, 주변의 소음에 중간중간 말이 끊기면서도, 힘겹게 전하는 말. 이제 더이상 너를 의심하지 말라고. 멀리, 더 멀리 가서 너가 있는 곳을 프림 빌리지로 만들며 살아가라고, 그렇게 서로를 생애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며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공중에 흩뿌리는 사람들. 그리고 이 책의 후반부에 감동적으로 밝혀지는, 실제로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 모스바나의 점을 찍고, 선을 이어간 사람들의 자취. 결국 다시는 서로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지만, 그렇게나마 서로가 살아갔음을 생애 마지막에 확인하게 되었을 때, 그 사람들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막연하게나마 짐작할 뿐, 머리로 생각하면 할수록 더 빠져들어 심장이 마구 콩닥콩닥 뛰다 녹진해지곤 한다.
또 지수와 레이첼의 서사도 얼마나 아름다웠는데. 이 망해버린 세상에 서로의 과거를 서로밖에 모르는, 그만큼 서로가 필요한 부분을 딱 알맞게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하고도 독특한 관계. 난 중간중간에 나오는 이런 서술들을 보면 정말 너무 설레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한 지수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사실에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그런 레이첼을 유리창 너머로 보고 있으면 지수의 숨도 멈출 것 같았다.
캬⋯ 생의 어떤 한순간이 평생을 견디게 하고, 살아가게 하고, 동시에 아프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본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누구나 그런 메모리가 있지 않겠는가. 유독 생생하게 생각나고, 천천히 재생되는 과거의 몇 안되는 기억들. 가끔 내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왜곡이 일어나기도 하겠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순간에 대해 몇 번이고 재평가가 이루어지겠지만. 『지구 끝의 온실』은 그러한 기억들을 담담하게, 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을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선에서 풀어준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문구까지도.
해 지는 저녁, 하나둘 불을 밝히는 노란 창문과 우산처럼 드리운 식물들, 허공을 채우는 푸른빛의 먼지.
지구의 끝도 우주의 끝도 아닌, 단지 어느 숲속의 유리 온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 깊도록 유리벽 사이를 오갔을 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
🪴.
- 저자
- 김초엽
- 출판
- 자이언트북스
- 출판일
- 2021.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