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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이 책은 지난 겨울, 내가 정말 뜻깊게 수강한 [예술과 과학] 강좌의 강의 도서였다. 가장 사랑한 어린 왕자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사람을 대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인생의 시간을 구성해 나간다는 의미는 무엇일지, 이 모든 것들을 배우느라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 지난 겨울이었다. 진심으로 좋아했던 강좌였고, 해당 강좌를 알차게 구성해내신 교수님께서 강의 도서로 지정한 책은 또 얼마나 숭고한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행복은 무엇인가?
행복은 '꽉 찬' 시간의 다발이다.

 

  이 겨울, 해당 강의와 이 책으로 이어지기까지, 내가 내린 결론은 위와 같다. 모두들 말하곤 한다. 행복은 추상적인 것이고,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이고, 주관적인 것이고, 또.. 누군가는 행복하다고 생각해도 그게 실제로 객관적 행복을 증명해주진 못한다고. 하지만 그렇기에 비로소 언젠가 한 번은,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이 무엇일지 떳떳이 정의내려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너의 행복은 뭐야?"라고 물어보았을 때, 나의 대답을 머뭇거림 없이 당당히 내놓을 수 있도록.
 
  나의 경험의 총집합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늘어놓는 것으로 나의 행복의 뜻을 찾아가는 흐름이 타당할 듯하다. 시작해보면 우선, 나는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다. 가끔씩 손이 안 따라줄 때도 있긴 하지만, 그와 비슷한 빈도로 어떨 땐 내 손이 나를 이끌어가듯, 내 눈이 내 손을 이끌어가듯 내 머리 속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그림이 인화되듯 그대로, 또는 그보다 더한 퀄리티로 캔버스 위에 그려질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짜릿한 쾌감에 가까운 형태로 행복을 경험한다. 
 
  또, 역설적이게도 나는 요즘 직장이 행복하다. 누군가에게는 기만처럼 들릴 수도 있고, 자기 합리화를 위한 거짓말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회사에 출근해 개발자로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신없이 목표한 기능들을 구현해 내다 보니, '벌써',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어버렸을 때, 매번 느낀다. 와, 재밌다. 라고. 기획팀은 이 기능이 앱에 추가되어 사용자들이 좋아할 지 말 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손을 떠나보낸 기능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디자인팀은 기획팀에서 넘어온 기능을 사용자에게 가장 우리 서비스다운 방식으로 해석하여 제시하기 위해 컬러 하나하나, 간격 하나하나, 워딩 하나하나를 고심하여 넘겨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기대와 노력을 반영해 나에게까지 넘어온 기능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이 세상에 드디어 존재하는 것으로 탈바꿈시킬 때, 그런 창조적인 개발이라는 역할을 부여받은 나는 가치를 느낀다. 보람을 느끼고,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낀다. 그렇게 나는 이 회사에, 이 팀원으로, 동료로 존재하게 되고, 이 모든 역할과 감정과 상황이 톱니바퀴처럼 들어맞으면서 나는 이 시간 위에 내가 정의한 행복이라는 도장을 꽝! 찍어낼 수 있는 것이다.
 
  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눈을 맞춰 대화할 때, 마치 즉흥적인 재즈 연주를 해나가듯이 말이 핑퐁 오갈 때, 너와 나 이렇게만 이 공간 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눈 네 개, 입 두 개로 존재하는 것같은 기분일 때, 가끔 고개를 들어 참 따스하고, 상쾌하고, 때로는 시원선선하고, 때로는 추워서 이불 속 안온함을 기대하게 만드는, 그 모든 날씨의 변덕스런 흐름 중 오늘 하루라는 단면을 딱 잘라 발견했을 때, 그것을 온전히 감사하게 생각하게 될 때, 행복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바로, 나의 의식이 집중되어 있는 시간들, 나의 포커싱이 첨예하게 다듬어진 시간들, 내가 대상에 몰입하는 시간들. 그렇기에, 행복은 몰입이리라.
 
  그리고 더한 것은, 이 세계만의 비밀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듣기 전까지는 새삼스럽게 깨우치지 못하는. 나 역시도 생각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던, 비밀.

우리의 영원은 우리의 의식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잔물결로서 존재할 수 있거든요.

 

  영원히 존재한다는 의미는 존재하는 객체를 무엇으로 정의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의식, 영혼, 또는 살아 숨쉬는 내 육체, 많은 후보군이 있겠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물리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나'여야지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정의내리고 싶지 않다. 나는 좀 더 넓은 것, 더 비가시적인 것을 생각한다. 나의 자취, 나의 영향. 쉽게 말하면 나비🦋의 날갯짓이 저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그 흔한 말. 내가 존재하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약 20년, 그 시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교류하며 서로의 인생에 알게 모르게 간섭하여, 서로의 항로를 조금씩 바꾸기를 수백 번, 수천 번, 수만 번 가까이 해왔을 것이다. 그들이 원치 않더라도, 나는 그들의 인생이라는 항해를 가속시키거나, 감속시키거나, 아니면 방향을 바꿔놓은 것이다. 운동 상태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힘의 정의와 판박이지 않은가. 는 그렇게 타인, 또는 조금 더 확장하여 나의 외부 세계에 힘을 가할 수 있는 70년 남짓한 수명의 에너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읽은 '잔물결'이란 단어는 나에게 이런 의미로 다가왔다. 내가 영향을 미친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얽히고설킨 이 세계에서 나의 존재감은 마치 파동처럼, 흘러흘러 퍼져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약 사후세계가 존재하든, 설령 존재하지 않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모품인 시간으로, 그것만이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채워나가느냐가 우리 삶의 가치,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행복'이란 잣대로 드러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타인에게 긍정적 영향을 줄 수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는 퍼텐셜 에너지로 흘러흘러 넘쳐가며 살아간다는 것.


  참 깊이있지 않은가. 적어도 내 레벨에선 그랬다. 읽는 내내 공감하기를 몇 번, 놀라워 하기를 몇 번,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나니 훨씬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역시 교수님께서 강의 도서로 선정하신 책은 참 대단했다! 😊

 

 
몰입의 즐거움(리커버판)
2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 & 첫 전자책 출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인문서의 바이블 “무의미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느낀다면, 몰입을 주목하라!”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인문서의 바이블 『몰입의 즐거움』이 국내 출간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디자인의 표지와, 현대에 맞는 한글 표기법으로 전면 수정하여 다시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재출간되는 스페셜 에디션과 함께 전자책도 출시하여 독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심리학ㆍ교육학의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출판
해냄출판사
출판일
202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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