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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했다.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문화와 생활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었다.” 단편 속 건휘의 말이다. 이런 담담한 말투로 내뱉는 말 앞에는, 파랗게 조용히 가라앉은 헝가리 국회의사당에서의 야경이 조화롭게 이 단편에 녹아들어 있다. 아름답고 쓸쓸하다.우리는 이따금씩, '그냥 이렇게 살면 안 될까?' 하는 생각으로, 그전까지 전혀 고려해보지 못했던 방식의 삶에 급류와도 같은 낙하의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종종, 그런다. 왜냐하면 세상은 넓고 사람 사는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삶을 살아가는 자세들이 준비되어 있으니까.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두고 말할 것 같으면 그 장점도 단점도 가장 많이 아는 자는 당연히 나다. 매일 눈앞에 두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다른 누구보다 우리의 삶.. 더보기
『브로콜리 펀치』 일상은 어쩌면 말이다. 이렇게 비일상적인 해프닝들이 불쑥불쑥 무식하게 우리 방문을 열어젖히고 찾아올 수 있어야 비로소 삶이 살 만해지는 건지도 몰라.More than Just a Lovely 🦎술을 진탕 마시고 들어와서는 알몸으로 이구아나를 쳐다보다 신세를 한탄한다. “우리 둘 다 쓰레기한테 버려진 쓰레기 신세야.” 그대로 몇 분 간 물끄러미 눈앞의 미물을 바라보다가, 마치 E.T.와의 조우를 암시하는 듯한 행동을 했다. 두 눈 사이, 이마로 추정되는 부분이 딱 한 손가락으로 문질러주기 알맞은 크기였기 때문에, 오늘날에서야 2년 동안 함께 산 이구아나의 피부는 상당히 말랑하구나, 하고 깨닫는다. 마음에 드는 건지 지그시 눈을 감은 이구아나, 손가락 아래에서 갑자기 헛기침과 함께 웬 육성이 들려온다. “.. 더보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높은 것, 낮은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기쁨, 슬픔, 남자, 여자.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치 절대자에 의해 균형감 있게 설계된 것마냥 양과 음의 패러다임에 착착 들어맞는다. 딱 한 가지,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가장 신비롭고 타의적인', 가벼움과 무거움의 대립만을 빼고.     기원전 5세기 파르메니데스는 가벼운 것에 양의 개념을, 무거운 것에 음의 개념을 부여했다. 하지만 이 이분법이 양의 가벼움을 추구해야 할 긍정적인 지표로 격상시켜준다기엔 뭔가 애매하다. 깃털처럼 흩날리는 게 정녕 좋은 것인가? 우리가 흔히 '코끼리 귀처럼 팔랑거린다'고 붙인 관용어구는 다소 냉소적인 시선을 담아내고 있지 않은가? 진중하다, 입이 무겁다⋯ 세상에는 분명히 긍정적인 무거움도 있어 보인다. 하지.. 더보기
『센트 아일랜드』 꿈이 있는 자들에게는 꿈 냄새가 나.꿈이 있는 한 네 몸에 밴 꿈 냄새는 절대 지워지지 않아.    어떡하지, 다린아. 나는 요즘 내 꿈이 뭔지 모르겠는데. 오늘은 일어나서 긴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어. 어제 보다 잔 리그 오브 레전드 스토리 애니메이션인 Arcane을 만든 제작자들이 얼마나 예술적인 사람일지, 자신의 일에 영혼을 갈아넣는 사람들일지 울망울망 떠오르는데, 그게 요즘의 나와 너무 대비되어서 말이야.    나는 오늘 아침 한껏 걱정을 하며 일어났어. 오늘 자정까지인 과제가 하나 있고, 내일 자정까지인 과제가 하나 더 있는데, 오늘 저녁 줌회의까지 완성해야 할 또다른 팀플 과제는 아직 손도 못 댔거든. 셋 중 하나만 있었으면 기운차게 으쌰-! 하면서 일어났을 텐데,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더보기
『파친코』 우리에게는 조국이 없어. 삶은 통제할 수 없는 일투성이니까 적응해야지.내 아들은 살아남아야 해.     민족은 상상된다. 살면서 절대 다 만날 일이 없는 천만 명의 인간을 '동포'라는 이름 하에 사랑하고, 연민하고, 돕고 살아간다. 그 '민족성'이라는 개념 하에 하염없이 길게 쓰여진 역사, 그것은 공식적인 기록이었다. 사건들과 연월일시, 그리고 연결고리들, 흐름. 하지만, 그 기록을 뒷받침하는 가장 작고 가녀린 단위체를 확대하고 확대해 들여다보면 그것은 역시 개인의 역사였다.   선자의 삶은 버석하다. 적어도 내가 느낀 그녀의 삶은 그러했다. 충만한 물기를 품은 풀내음이 맡아졌다고 할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하지만 습기가 가득한 삶이었다고 하여도 그건 늪지대나 갯벌의 진득한 습기였으면 그랬지, 가벼운 .. 더보기
『Ways of Seeing』 Why so many 'nudes' in European oil paintings? That was the question that I barely could have answered to with the vague emptiness of elongated "well⋯". Well, surely The image is what comes before words.   as declared adamantly first and foremost in the book. Upon gazing at the so-called master's works, the masterpieces, we are likely to wonder 'how' those displayed highly up in the glamorous go.. 더보기
『아직, 도쿄』 좋아하는 걸 얼마큼 더 좋아해야 알고 싶은 모든 걸 다 알게 될까.  “무언가를 좋아함에도 에너지가 필요하고, 나는 쉽게 지치는 나이를 살고 있는데.“  일이 년 전쯤에, 어떤 경로였던가, 누가 그랬다. 사람이 늙어버리는 순간은 도전을 포기하게 되었을 때라고, 그 마음 속 불꽃이 사그라들어 버렸을 때라고. 당시에는 이걸 읽으며 ”음, 나는 그럼 오래오래 늙지 않겠군!” 하고 자만하더랬다.  나는 요즘 마음이 오들파들 떨고 있다. 감정이 체념이 아니라 불안으로 정의되는 것은, 내 마음속 불꽃이 아예 꺼져버렸는지 아님 약해졌을 뿐인지 마치 블랙박스처럼 알 수 없음에 있다. 예전에는 ‘쉬어가도 괜찮아요. 도전하는 용기만이 용기가 아니라, 그만둘 용기도 용기에요.’ 따위의 흔한 위로 문구를 보면 질색부터 했다... 더보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사강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결말이 나를 좀 벙찌게 화난 상태로 놓아두었다. 어떻게 예상하지 못했을까. 결말까지 달려가는 동안 야금야금, 하지만 꾸준히, 폴의 심리는 결국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투였다. 결국 시몽은 일시적 도피처이자, 끝내 로제에게 돌아갈 폴의 사랑스러운 희생양, 영원을 약속할 수는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리고 로제는 그녀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옹고집스러울 정도로 절대적인 독자적인 세상 그 자체. 그녀는 39살이고, 그들이 만난 기간은 육 년에 불과했으나, 어쨋든 그녀는 스스로도 느꼈더랜다. 자신은 남은 평생을 결코 로제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대체 왜? 그 사실이 나를 좀 불쾌하게 만들었다. 시몽이 당신은 왜 나보다 로제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