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강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결말이 나를 좀 벙찌게 화난 상태로 놓아두었다. 어떻게 예상하지 못했을까. 결말까지 달려가는 동안 야금야금, 하지만 꾸준히, 폴의 심리는 결국 이렇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투였다. 결국 시몽은 일시적 도피처이자, 끝내 로제에게 돌아갈 폴의 사랑스러운 희생양, 영원을 약속할 수는 없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리고 로제는 그녀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옹고집스러울 정도로 절대적인 독자적인 세상 그 자체. 그녀는 39살이고, 그들이 만난 기간은 육 년에 불과했으나, 어쨋든 그녀는 스스로도 느꼈더랜다. 자신은 남은 평생을 결코 로제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대체 왜? 그 사실이 나를 좀 불쾌하게 만들었다. 시몽이 당신은 왜 나보다 로제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폴에게 던질 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랬다. 아아, 시몽 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육 년을. 단순한 연인으로서의 기간이 아니라 기쁨과 회환과 온정이 가득한 그 시기를. 나와 로제와의 그 복잡한 관계를⋯ 하지만 로제와 그녀 사이에 정확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아니 대략적으로 얼마나 자주 서운하고 풀어지고, 위안을 얻고, 실망을 하고, 하지만 결국 '다시'라는 감각을 느꼈는지, 암시적으로만 제시되어 대략 유추할 수 있을 뿐, 직접 그 경험을 같이 책을 통해 뚜벅뚜벅 걸어나가지 않은 나에게는, 납득할 수 없었다. 나의 경험이나 연륜의 부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스물두 살의 '어린' 나는 폴에게 실망이 컸다.
물론 안다. 책에서 말해주지 않았는가. 그녀는 서른아홉이었고, 시몽은 스물다섯이었다. 이는 단순히 열네 살의 차이가 불러올 세간의 입방아나 눈길만을 장벽으로 삼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는 어렸고, 그는 열정으로 가득 찰 나이였다. 아마 서른아홉의 폴에게도 그와 같은 시기가 있었겠지. 작중에서도 폴이 잠든 시몽을 내려다보며 마치 '어릴 적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고 언급된 부분이 있다. '삼 대에 걸쳐 내려온 행복에 대한 강한 갈망과 확신으로' 개척하고, 진취적으로 변화를 도모하던 그녀는 이제는 늙어버렸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그녀는 안주하길 원했다. 착상하길, 굳어지길 원했다. 또다른 누군가와의 사랑이 시작될 때의 그 권태롭게 똑같은 레퍼토리를 모두 되풀이하기엔 너무 늙어버린 것이다, 정신적으로. 음악회에 가서 옆 좌석에 앉은 데이트 상대가 슬쩍 손을 잡아오는 사소한 것까지도 다. 끔찍할 정도로. 한 번의 이혼과 한 번의 이별과 지금의 로제. 물론 지쳤을 수 있다. 감정적으로 소모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는 꼬부랑 할머니처럼 자신의 앞에 닥친 '운명'이자 '숙명'같은 비현실속의 개념을 자신의 머리로 기정 사실화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눈을 감고 고통을 수긍할 일인가. 나도 서른아홉이 되면 지금같이 추구하는 모든 다양한 즐거움이나 도전, 성취를 떨쳐버리고 익숙함이 주는 소중함의 가치나 외치며 쥐죽은 듯 고요히 살게 될 것인가. 설령 그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명백히 자기를 파괴하는 일'일지라도.
해설에 의하면, 사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예술의 환상은 우리로 하여금 위대한 문학이 삶과 밀착되어 있다고 믿게 하지만, 진실은 그 정반대이다. 삶이 무정형적이라면, 문학은 형식적으로 잘 짜여 있다.” 이 말을 듣고 조금은 감탄했다. 사강이 생각한 문학의 진실과 그 진실을 놀랍도록 생생히 직접 책에 담아낸 바로 그 점이. 결국 폴은 시몽을 떠나고 로제에게 다시 귀속되리라. 뻔한 결말이었다. 단지 그 사이에 있는 세 사람의 연속적이고 가변적인 심리 묘사가 나를 평온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고 마지막에 가선 아쉬워하며 마지막 장들을 뒤적거리게 만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하나의 '이야기'에 대해 이토록 확실한 나의 감정이자 의견을 드러낸 것 같다. 그전에는 단순히 내용에 대한 소박한 소감이나 좋았던 인용들, 그리고 내 삶에 연결지을 수 있는 부분들을 간단히 언급하며 심플한 '좋았다'로 감상문을 마무리했는데 말이다. 이 말은 사강 그녀의 소설이 정말 능숙하고 탁월하게 사람의 감정선을, 나의 마음을 역동시켰단 의미겠다. 이 맛에 문학을 읽는다.
- 저자
- 프랑수아즈 사강
- 출판
- 민음사
- 출판일
- 2008.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