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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벅에 간다는 건

  저벅저벅. 스타벅스 마감까지는 앞으로 두 시간. 즉 지금은 8시의 늦은 저녁에 비장하게 '굳이' 외출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더이상 "하루종일이 텅 비어 있어야 하는데, 두 시간밖에 없어."라든지, "오늘은 그른 것 같네. 오늘은 그냥 좀 쉬어야겠다."와 같은 나약한 말을 지껄이지 않는다. 첫째, 내가 하루종일 날을 비워놓고 스벅에 여유롭게 가더라도 두 시간 후면 "아, 지쳤다ㅎ"하며 집으로 탈출을 꾀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두 번째, 무언가를 끝내기엔 한 순간, 한 장소에서 하고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에.

 

  스벅에 간다는 건 그런 의미다. 지금, 이곳에서, 끝내는 거지? 하는 거지, 지희야?!

 

  나는 내가 많이 쉬어야 한다고 스스로 진단을 내렸더랬다. 지금은 아무것도 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며. 너무 의무 속에서 매일을 살다가 이제야 좀 탁 풀리는 해방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그게 집 침대에서 매일 뒹굴거려야 한다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의 나와 매우 반대로 사는 내 친구 ☀️가 있다. 자신은 집에 한번 오래 있으면 급속도로 우울해지고 쳐진다고. 그래서 밖으로, 사람들을 향해, 취미를 향해, 무리해서라도 뽈뽈뽈 돌아다니는 나의 파워 J 친구. 그 친구의 스케줄을 보면 가끔 숨이 막힐 때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나도 저랬던 시기가 있었는데. 대체 왜 그랬지? 하고 과거의 나한테로 시선이 돌아간다.

 

  왜 그랬냐고? 간단하다. 나는 타인의 시야 내에 있어야 일도 하고 책도 읽고 자세도 꼿꼿이 펴지고, 딱 갓생러이자 멋진 나 자신이 된다. 그런 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남들을 의식'하는 것이었다니, 그건 좀 아쉽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보여주기 식이라느니, 그런 건 진짜가 아니라느니 하는 불필요한 왈가왈부는 집어치울련다. 동기가 무엇이 되었든, 나는 아직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정갈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신독'의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카페에 나가기 위해서라도 씻고, 머리를 깔끔하게 묶어 올리고, 편한 옷을 입고 저벅저벅 걸어가 한 순간 집중해서 해치우고 오는 것이 뭐가 나쁜가? 오히려 지향해야 한다. 내게 현재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질적인 나 자신에게서 우러러 나오는 동기보다는, 지금 당장 내가 할 일을 해치우고, 그 결과로써 자유로워지고, 그 자유로써 나의 본질적 욕구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진지한 결심을 하고 시간이 늦었든 이르든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스타벅스에 가고 있다. 저벅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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