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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시트러스 맛 쿠키처럼

  인생은 조금 더 달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또 무엇보다, 즉흥적인 모험을 종종 끼워넣을 수 있는 여유로움을 위한 공간도 확보되어야 한다. 이건 그냥 여느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 정말 좀 더 능동적으로,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요래조래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오후에 너무 피곤해서 그만 냅다 자버렸다. 여름 오후의 더위는 선풍기 없이는 그냥 가볍게 무시할 정도가 되지 못하였고, 나는 찌뿌둥하게 어거지로 침대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깨닫고 보니 저 멀리 잠실역까지 가서 타인을 위한 선물도 두 개나 사야 했다. 쇼핑이 끝나면 그 근처 카페에서 개발 일을 마저 하리라, 까-망색 백팩을 매고 집을 나섰다.
 
  그 이후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갑자기, 비록 기후동행카드가 있지만, 탄천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그 좁은 냇가의 물내음이, 오랜만에 목말랐다. 그래서 편하게 지하철을 타는 대신 녹슨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반 정도 갔을까, 중간에 지치는 구간이 있었다. 그땐 쿨하게 쉬었다. 옆에 자전거를 주차해 두고 좋아하는 노트북의 키보드를 토닥토닥 몇 번 두들기다 보니 체력이 돌아왔다. 그래서 다시 자전거를 탔다. 가방에서 예전에 받은 라임맛 막대사탕을 꺼내 옴뇸뇸 입에 문 채로. 하늘 위엔 구름 같은 그림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있었고, 잠실 한강공원을 지나가면서 쓱 구경한 사람들은 모두 따사로운 일요일 오후를 제대로 음미하고 있었다.
 
  멀리, 머얼리 자전거를 타고 나아갔다. 그 마지막은 즉흥적으로 발견한 칵테일 집에서 피날레를 장식했다. 귤과 부라타 치즈가 잔뜩 들어간 샐러드 하나와, 로즈 가든이라는 붉은 과일 듬뿍 칵테일 한 잔과 개발용 맥북 하나. 그 셋의 조합이 그렇게 상큼할 수가 없었다. 하늘은 그 어느때보다 선명한 초저녁, 그리고 가로등 불빛들은 제각각 뽐낼 수 있는 최대의 밝기로 제자리에 알알이 박혀 있었다. 눈을 반쯤 감으면 온 세상이 반짝반짝거린다.
 
  인생의 행복은 좀 더, 구체적인 곳에 있다. 나는 내가 과일 계통의 칵테일을 좋아한단 사실과, 귤이 들어간 시원한 샐러드를 참 좋아한다는 새로운 취향을 발견했다. 이제 누가 물어본다면 나는 조금 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그리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 
 
  오늘 마약에 취한 사람처럼 내내 기분이 너무 좋아, 인스타 스토리에 사진들을 잔뜩 올려 내 이 어메이징한 하루를 공유할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굳이 나 스스로가 너무 잘 놀고 있다는 걸 자랑하듯, 타인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의 나 자신에 대한 철학은 이렇다. 나 자신을 애인처럼 대하고,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그리고 가장 실질적인 방식으로 사랑하기. 그 결과 나 자신이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이 되기. 하지만 이 철학을 내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며, "나는 타인이 필요없는 사람이야." 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은 필요없는 것을 뛰어넘어 적절치 못하다. 이건 나와 내가 서로 키득키득하며 서로를 사랑해주는 방식, 비밀스러운 인생철학을 공유하는 방식.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인생은 시트러스 맛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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