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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ing money

안녕, 과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나는 이 제목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 권위적이지만, 따스하고, 다정한 눈빛이 담겨 있는 말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최근에 읽은 책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에선 쇼펜하우어 할아버지가 나와서 냉철하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늙는다는 것'에 대해 알려줬어. 인생의 열기로부터 한 발자국 벗어나, 허영된 욕심을 보고 웃을 수 있게 되며, 자신이 추구할 수 있는 최대한 고통 없는 상태를 지향할 줄 알게 되는 거래. 그저 미친 듯이 '해야 하니까' 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에 진지한 얼굴과 합리적인 태도로 '왜?'를 던질 수 있게 되는 거지. 바쁘게 뛰어다니는 젊은이들을 보며 조바심을 내는 게 아니라, 평온하게 관조할 수 있게 되는 거지. 
 
  그동안 내가 뭐에 씌였다고 말할 수도 있겠어. 하지만 나는 그 표현보다는 '배워가는 과정 중에 있었다'고 말하고 싶어. 여기는 내가 솔직할 수 있는 가장 최후방 지대니까 털어놓자면, 나는 과외가 좋았어. 3.0을 받던 첫 과외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은, 4.5에서부터 6.0까지 시간당 받고 있거든. 내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그 수치적인 차이를 보기만 해도 뿌듯했어. 내가 갖고 있는 것으로 이만큼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 '나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그만둘 생각 따위는 추호도 하지 않았지. 생각해봐도 그렇잖아. 유능한 내가 할 수 있는 이 좋은 걸 왜 그만 둬?
 
  하지만 이제 누군가가 나에게 진지한 눈으로 물어본다고 해보자. 그 '좋은' 게 뭔데?
 
  그냥 하루 두 시간만 하는 건데 한 타임이 끝나고 가면 뚝딱 내 수중에 10만 원이 떨어져 있는 거잖아. 내가 고등학교 때 잘 배워 두었던 지식에 대한 보상을 직접적으로 되돌려받는 시간들인걸?
 
  하지만 넌 그것의 기회비용이 뭔지 몰라?
 
  난 여기서 말문이 막혀 버리고 만 거야. 서른 살의 나는, 또는 꼬부랑 할머니가 된 나는 내 인생을 되돌아 보았을 때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죽음은 거대한 Ctrl + S 키와 같아. 너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의 예측할 수 없는 변화들에 종지부를 찍는 거지. 자, 이 사람은 이렇게 살았답니다. 땅땅땅. 당장 서른 살까지 가지 않아도 내가 돌이켜 생각해 보기에 나의 작년 2학기는 조금, '어우'였어. 난 나의 야심찬 심성을 알아. 남들은 안하고 있는 걸 내가 하고 있다는 사실에 도파민이 절로 나온다는 사실도 알지. 하지만 그것 때문에 과외도 네 개씩이나 뛰면서, 조교 알바도 나가면서, 밤새서는 개발 일을 하면서, 그리고 학교에 졸지 않고 나가 열심히 수업을 듣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너는 아침 수업도 잘 빠지면서 그게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는 아이에 불과했잖아.
 
  아야, 아파. 하지만 사실인걸. 여기다 '인생'이란 키워드를 갖다 붙이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몰라도, 그래도 짧지만 인생의 한 조각이잖아. 그렇게 보낸 작년 후반부는 나에게 남은 가치가 없어. '하얗게 불태웠다' 정도? 나는 돈은 많이 벌었을 진 몰라. 하지만 내가 돈 좀 번다고 오만해서 더 많이 쓴 것도 있으니 그건 쎔쎔이야. 그럼 정말로 남은 게 없어. 나는 그림은 거의 손도 대지 못했어. 이미 과외를 통해 돈을 벌고 있었으니 어떻게 하면 창조적으로 돈도 벌고 커리어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도 어느 순간부터 멈췄지.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몰입의 즐거움'을 놓쳤지. 정말 전형적인 현대인이 된 거야. 이것저것 무슨 바퀴벌레마냥 여러 개의 손으로 일할 수 있을 줄 안 거지.
 
  솔직히 이유들은 더 많을 수 있겠어.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 나는 내가 돌이켜 봤을 때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해. 그게 그냥 과외를 그만 두고 띵가띵가 놀겠다는 소리가 아니야. 나는 좀 더 숲을 볼 수 있어야 할 것 같아. 장기적으로 보고, 생각하고, 깨어 있는 사람이어야 해. 가장 결정적으로, 필요한 순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어야 해.
 
  넌 돈의 노예가 아니잖아. 적어도 난 그렇게 믿고 있거든, 지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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