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aking money

위 성인은 오늘부로 과외를 수료하고 졸업합니다.

  나는 대치동에서 자랐다. 이 말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내가 충분히 놀고 즐겨야 할 유년기를 빼앗겨버린 것 마냥 빡세게 자란 애처럼 대하는데, 막상 또 그렇지는 않다. 나도 초등학교 때 매일 하교 후 집 앞 운동장에서 모래와 뒹굴며 그네를 타고 술래잡기를 하고 폐가 팽창해 터질 때까지 뛰어다녔다. 영어학원에서 정말 좋아하는 쌤과 penpal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많은 반과 많은 친구들에게 과 미련을 두고와서, 지금에 와선 그 모든 유년기의 기쁨 그 자체가 흐려짐과 동시에 더더욱 소중해진 것 같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 내 학원비에 부모님이 많은 돈을 쏟아부으신 것은 사실이다. 내가 성인이 되고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어쩌면 성인이 되었지만 대학생은 못되었더라면 더많이. 그래서였을까? 대학교 들어와서 '과외'라는 건 정말 내게 달콤한 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대치동 학원판에 투자한 돈의 일부라도 고액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기회’. 첫 과외는 1시간 3만원으로 시작했다. 과외를 졸업할 때, 그러니까 지금에 와서는 1시간 6만원으로 과외하고 있었다.
 
  경제 책, 투자 책들은 말한다. 돈은 일일이 버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그때부턴 굴리기 시작하는 거라고. 하지만 무일푼 사회초년생 대학교 1학년이었던 나에게는 과외처럼 '내가 일정 시간을 투자했을 때 꼬박꼬박 거금이 비례해서 나오는' 황금 자판기 기계가 또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알바와 과외를 동시에 할 땐, 이 알바 시급으로 N시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과외로는 편하게 한 시간만에 벌 수 있다-며 (속으로만) 불평하기도 했다. 돈처럼 가장 직관적이고 명료한 기준 앞에서, 다른 협동정신이라든지 사회생활을 배워간다는 긍정적인 감각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으리라.
 

 문득, 삶의 어느 시기가 지나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것이, 이제는 슬슬 과외를 그만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였다. 돈이 매달 200만원씩 정기적으로 들어와서였을까? 돈도 들어오겠다 이제 온전히 회사에서 내가 맡은 task에 온정신을 집중하고, 내가 몸담고 있는 전공 본업에서의 경험을 더 쌓고 싶어서였을까? 나는 과외를 모두 그만두었다. 더이상 통장의 앞자리가 매월 치솟고 하진 않게 되었지만, 후련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과외가 속된 말로 그냥 '개꿀' 직업이라 생각했지만, 항상 내 정신의, 내 스케줄의 일정 할당량을 떼어 그곳에 묶어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시간뿐만 아니라 의식적인 올가미가 잡혀있었던 셈이다. 당연한 말이다. 이 세상 어떤 일이, 어떤 직업이 안 그러겠느냐마는, 난 아직 학생이었기에, 이렇게 일에서 벗어남으로 말미암은 자유로운 상태를 순수하게 아싸! 하고 껴안을 수 있었다.
 
  앞선 정리가 무색하게도, 그 뒤로 과외의 유혹에 한번 더 넘어간 적이 있다. 작년 5월이었다. 친구가 1시간 6만원에 과외하고 있는 집을 소개해줬다. 거절하려 했지만, 한 시간에 6만원? 계속 머릿속엔 6 6 6 6 이렇게밖에 사고가 흘러가지 않았다. 쓸데없는 방향으로만 예민한 것 같다 인간의 뇌란 정말. 그렇게 일주일에 1회, 세 시간씩 과외를 하던 지 딱 1년이 되었을 시점, 학생의 사정으로 과외가 정리되었다. 도합해서 벌만큼 벌었고, 내 삶에서 과외할 만큼 해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더욱 아무 미련 없이 삶의 next stage로 넘어갈 수 있는 것 같다. 
 

  Now I finally HAVE graduated 'private tutoring'.

 
 
  그동안 과외로 번 돈이 얼마나 되었을까? 한창 전성기 땐 평균적으로 월 200만원을 벌었다고 해보자. 한 6개월 정도 그랬으려나? 그렇지 않은 월들은 평균내서 100만원을 벌었다고 해보자. 회사에 취업할 때까지 과외를 1년 반 정도 열심히 했으니, 200만원 x 6 + 100만원 x 12 = 2400만원이다. 그리고 마지막 과외에서 번 돈은 70만원 x 10 = 700만원. 총합 약 3000만원을 벌었다고 하자.
 
  그럼 그 돈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꺼억-. 역시 들어오는 돈이 많아지면 나가는 돈도 많아진다는 법칙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가 보다. 해외여행도 좀 다녀왔다. 일본에 세 번, 싱가폴 한 번, 그리스 한 번. 국내로는 부산도, 경주도 한 번씩 다녀왔다. 필라테스를 1년 정도 했으니 총 150 가까이 들었을 테고, 헬스도 60만원 주고 끊었다. 그 외로는 다달이 나가는 식비가 엄청나다는 걸 깨달았다. 등록금도 1학년 1학기 빼곤 다 내 돈으로 냈다. 그 정도는 벌 수 있었으니까.
 
  이젠 그저 좀더 시간을 운용할 수 있는 자유를 얻고, 시간을 쓸 대상을 선택하는 데 있어 자유를 빼앗겼을 뿐이다. 딱 그뿐이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림을 왕창 그리는 것이다. 이 일은 돈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
 
  그럼 이만, 저는 드디어 행복하게 과외를 졸업해 보겠습니다.
 
 

  👋🏻

'making mone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독이면 뭐 어때  (0) 2024.08.16
당신에게 통나무를 줄 수 없는 이유  (0) 2024.08.14
Can we make it out?  (0) 2024.08.08
8월은 나의 연옥  (6) 2024.07.24
두 번째 IR 발표 후기 😳  (1) 2024.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