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 말투, 그리고 이해.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난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가능성의 영역에 들어선다고 굳게 믿고 살아오던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게, 나도, 상대방도, “아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기서 뭐 어쩌라고-” 같이 감정적으로 대화를 종결지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대화로 찬찬히 풀어나가지 못할 게 뭐 있겠는가.
흔한 비유지만 엉킨 실타래를 풀어낸다는 것이 참 잘 어울린다. 이 방면 저 방면으로 오목조목 돌려보고, 섬세한 손길로 조금씩, 가장자리를 느슨히 풀어헤쳐 놓고, 그와중에 가운데 실이 갑자기 팽팽하게 당겨지는 순간, 중심에 굳어버린 돌멩이같은 실덩어리 하나가 발견되는 순간, 아- 당신과 나는 이것 때문에 이렇게 갈등해야만 했던 거군요, 하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해소하려 노력하는 과정.
하지만 그와 대화하던 중 발견한 갈등의 핵심은, ‘이야 드디어 찾았네’ 하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 이부분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고?’ 였다.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달까.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A가 당연히 최우선가치를 가지고 있지-’ 라고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그는 ‘당연히 B가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하는 상태. 갈등의 핵심이 이렇게나 근본적인 가치관 뿌리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 걸 알아챈 순간, 나는 벙찌고 만다. 엥, 우리는 이대로 끝내 합의되지 못한 채 서로를 조금은 실망스럽게 여기며 갈라설 수밖에 없는 건가요.
거기서부터는 ‘음, 미안해. 그럴 수 없어서.’ 를 조용히 서로에게 건네주고, 끝내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앞으로 행운을 빌어요- 하고 마지막 손을 흔들어야 할 것 같다.
내 생각이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만큼이나 상대방도 자신의 생각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다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이번 기회에서야 그 말을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도 이 상황의 서로 어쩔 수 없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극T.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풀이법을 강구하는 것마냥, 어떻게든 서로 조금씩 내려놓고 희생하면서라도 이어가보자고 한다. 경영을 공부한 사람인 만큼 협상 테이블을 운운한다. 하지만 난 이 협상 테이블이 결코 윈윈이 될 수 없다는 걸, 둘중 하나는 결국 자기 마음 속의 목소리를 죽일 수밖에 없을 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내려간다.
이쯤 되면 나는 내가 옳은 것인지, 그가 옳은 것인지, 아니, 애초에 객관적으로 옳은 게 존재할 수는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내가 항상 옳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되도록이면 틀린 선택은 하고 싶지 않은데. 상대방의 입장이 납득되는 만큼이나 내 고집이 흔들리고 와해되는 것 같아서 두려웠다. 나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건 굉장히 모순적인 말이다. 정확히는 나의 어떤 부분을 잃고 싶지 않느냐가 맞다. 나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의 어떤 부분이고, 내 건강과 내 체력이, 내 삶이 우선이라는 것도 잃고 싶지 않는 '나'의 또다른 부분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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