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 위에 작은 뗏목 한 척이 둥둥 떠있다. 그 위에는 난파된 네 명의 해적이 옹기종기 앉아 노를 젓고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항해사 두 명은 벌써 몇 개월 째 이 바다에 표류중이다. 보물섬을 찾으리라, 끊임없이 다짐하고 바라면서 몇 개월이고 미친듯이 노만 저어 왔더랬다.
그러던 와중, 그들의 뗏목은 처음으로 자그마한 섬 하나를 지나가게 된다. 아담한 섬, 코코넛이 달린 야자수 나무들은 꽤 보이지만 어딜 보나 보물섬은 아니다. 그 푸른 섬에서 눈길을 못 떼던 2등 항해사는 마침내, 이제 더는 못 젓겠노라, 나는 여기서 내릴 것이다- 하고 단언한다. 나는 이대로 가다간 바다의 산송장이 되고 말 거라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1등 항해사는 그 말에 경악한다. 한 명 분의 노동력을 잃은 뗏목은 예전만큼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왜 지금 굳이 내려야만 하는가? 몇 개월 간 같이 개고생해놓고. 칼같이 지금 내려야만 한다는 그 단호함은 또 뭔가.
침묵 속의 그들 앞에 갑자기 게임마냥 상태창 하나가 띄워졌다. ‘1등 항해사가 손가락을 튕기면, 하늘에서 이 근처 주변 바다로 랜덤하게 통나무 한 개가 떨어질 것입니다.’
2등 항해사는 밝아진 얼굴로 이걸 1등 항해사에게 해줄 수 없겠냐고 부탁한다. 분명 의지할 통나무 하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육지까지 헤엄쳐 가는 데 아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1등은 눈살을 찌푸린다. 자세히 보시면, 이 주변이라고 하잖아요. 그게 저희 통나무 뗏목 위로 떨어지는 순간 저희는 박살나는 거에요. 저는 엄연히 이 배의 리더로서, 이 배를 침몰시킬 위험을 감수할 수 없습니다. 그나저나 2등님, 정말 지금 내려야 해요? 몇 개월간 해온 것도 있는데, 정말 서로 고생 많이했는데, 몇 주만, 아니 며칠만 더 같이 노를 저어줄 수 없겠어요? 그럼 정말 보물섬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2등은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아니, 지금 당신 말대로나 우리가 몇 개월간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는데, 이 빌어먹게 넓은 바다 위 콩알만한 뗏목 위에 어련히 그 통나무가 정확히 떨어지겠다. 이 쪼잔하고 무정한 놈 같으니라고. 이 뗏목의 통나무를 떼어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살길 하나만 좀 확보하게 도와달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싫나?
“정 하나를 봐서라도 나에게 좋은 일 하나만 베풀어준다 생각하고 해주면 안되겠나?”
그러자 1등도 똑같이 말한다. 안되는 건 안되는 겁니다. 그건 그렇고, 2등님이야말로 정 하나만 봐서라도 며칠만 더 같이 노를 저어줄 수 없는 겁니까? 꼭 이렇게 매정하게 나와야 하는 겁니까?
그러고 입이 일자로 앙 다물린다. 2등 항해사는 생각했다. 나는 정말 더이상 같이 노를 저어줄 수 없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도 간신히 똑바로 앉아 있는 상황이다. 나에겐 정말 더 이상 노를 저을 손톱만치의 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는 나를 쓸 때까지 쥐어짜 쓰고 버리려는 걸까.
하지만 그건 피차일반일 것이다, 라고 2등 항해사는 마저 생각한다. 그저 손가락 하나 튕기면 되는 일이, 1등에게는 너무나 두려운 것일 테다. 그저 며칠만 더 일하면 되는 거 아닌가, 라고 1등이 생각하더라도 2등인 나에게는 그게 죽으라는 말과 똑같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도 원하는 것이 있지만, 그들은 둘 다 그걸 상대에게 도저히 줄 수 없을 뿐이다. 딱, 그뿐이다.
2등은 더이상의 미련을 버리고 지체없이 시원하게 바다에 뛰어들었다. 꿈에 부푼 상태로 열심히 수영해갔다. 아아, 야자수의 코코넛 즙은 얼마나 달콤할까. 오랜만에 쬐는 모닥불은 또 얼마나 따뜻할까.
그게, 본질적으로 이해집단인 회사에 대해 내가 느낀 적확하고도 쓰라린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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