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매번 머리를 부여잡으며 연신 "어렵다, 어렵다"라고 외치는 한 할아버지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뒷걸음질 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은 죽을 때까지 무언가를 만들어낼 것이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와서 다시 자신의 어려움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한 할아버지가 있다. 참 멋진 할아버지다.
'멋진' 할아버지 👴🏻
모두들 눈치챘을 것이다. 바로 그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님이 이 할아버지라는 걸. 모두가 우러러보는 창작자의 대선배 같은 분, 가수 요네즈 켄시가 자신의 '북극성'이라 부르는 분.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까진 그가 그저 천재적인, 타고난 재능으로 머릿속에 잠재해 있는 세상을 그대로 뽑아내 현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특기'인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장장 7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필름에 담긴 미야 상은, 일관되게, 하염없이, 자기가 벌인 판에 고통받아가면서도 끝까지 그 판을 완성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이게 아니야. 이게 아니라고.
좀 더 이렇게-
제3자가 바라보는 미야 상은, 가장 완벽한 한 장면, 이미지의 이데아를 머릿속에 담아둔 채, 그걸 그림으로 뽑아내기 위해 자신과 주변을 들들 볶는 사람이라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미야 상도 모르는 걸 저희가 어떻게 그려내겠습니까" 하던 인터뷰이가 생각난다.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나 또한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무언가를 창작해 이 세상에 낼 수 있다는 긍지를 가지고 있었으면서, 무례하게도, "그 사람은 너무 대단하니까 창작의 고통과는 거리가 먼 이미지일 거야"라고 무의식 중에 생각하고 말다니.
"내가 보는 결과, 완성작은 그저 모든 것의 가장 마지막 끝에 반짝 하고 장대하게 보여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 앞에는 더더욱 '멋진' 할아버지의 고군분투가 존경스러울 정도로 오래간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었달까.
일에 미친다는 건
나 젊었을 적엔 말이야.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미치는 걸 명예라 생각했으니 말이야.
미야 상의 다작의 근원이 이해되는 발언이다. 프로듀서 스즈키 상은 이런 말을 했다: "미야 상은 말이야, 무엇이 저렇게 즐거워서 계속 하고 있는 걸까. 명예나 지위 등은 다 가진 사람이. 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 근간을 파고들어가 보자면, 미야 상이 일을 대하는 가치관에 똑똑 노크해봐야 한다.
마치 주변에서 일에 옭아매이고 만 저주받은 신, 옷코토누시(オトコトヌシ) 같다는 평을 받는 미야 상. 일에 미치는 걸 '명예'라고 생각했던 젊은 날의 그. 그는 창작의 'the zone'에 들어가는 걸 '뇌의 뚜껑을 여는 것'이라 비유한다. 자신을 몰아넣고, 뇌를 절개하고, 끄집어내고, 터트리는 매일을 살아내는 남자.
마치 이런 이미지같달까.
다큐 중 PD가 미야 상에게, '그림 그리기엔 몸이 힘들다며 은퇴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복귀를 결심햐셨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있다. 거기에 미야 상은 간단히 이렇게 답했다:
잊어버렸으니까 그렇지.
지침, 체력 부족, 노쇠, 이런 것들은 잠시라도 그림을 그리고, 한 세계를 상상하고, 그곳에 빠져드는 일에 비하면 그렇게 쉽게 잊어버릴 정도로 사소한 것이다-라는 말이 담겨있는 듯해 짐짓 감격스러운 기분의 세상 두려울 것 없는 젊은이가 되어버렸다. "잊어.. 버렸다고요?" 라고 반문하던 PD님의 말이 생각나 웃음이 나온다.
파쿠 상-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온 삶을 바쳐 영화를 계속 만들어낸 데에는 타카하타 이사오(高畑 勲)의 영향이 가장 컸을 것이다. 한 평생 존경하고 뒤따르며, 인정받고 싶어 청춘을 포함한 전부를 바치고, 진득하게 카타오모이(片思い, 짝사랑)하는 애증 관계의 경쟁자가 있다면, 그런 삶은 어떤 삶일까. 필시 벅차는 순간과 울분에 터지는 순간 모두가 다른 일반적인 삶에 비해 월등하게 많은 삶이겠지. 예술을 한다는 건, 창작자로서 자신을 identify 한다는 건, 그런 감정선의 롤러코스터를 인생에 터질 만큼 잔뜩 욱여넣겠다는 의지의 또다른 표명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장단점 모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쪽의 삶이 더 '풍부'하다고 느낀다. 질투심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나.
미야 상은 은퇴를 선언하고 나서 '파쿠 상', 즉 타카하타 상에게 정말 크게 혼났다고 한다. "영화감독에게 은퇴는 없는 것"이라며. 그리고 미야 감독이 복귀를 결정했을 때에도 가장 먼저 달려와 축하해 준 것도 파쿠 상이었다고 한다.
파쿠 상이 미야자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로 큰 성공을 거뒀을 때, 해당 작품에 100점 만점에 30점의 평가를 내렸다던 일화는 참 인상적이다. 딱 들었을 땐 제3자로서도 아니 도대체 왜?! 하는 생각이 든다. 미야 상도 "그래서 형편없다는 거냐-!!" 라며 흥분했다는 뒷이야기. 알고 보니 추후 인터뷰에서 파쿠 상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걸 30점으로 하면 100점이라고 할 만한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전하고 싶었어요.
축하로서의 30점이에요.
🥺
나의 잠재성을 나보다 더 진지하게 믿어주는 사람, 나를 다그치고, 몰아넣으면서 가장 최고의 나를 만들어주는 선배, 경쟁자. 나라도 짝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이건.
그런 파쿠 상이 죽었다. 미야 상에게는, 그를 보내줄 이야기, 그를 보내줄 영화가 필요했던 것 같다.
당신을 만나러 탑으로 향하는 여정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 다큐를 보기 전까지 타카하타 상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미야 상에게 있어 누구를 그려넣은 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영화를 봤다. 왜가리남은 스즈키 상, 그리고 큰 할아버지는 바로 파쿠 상이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미지의 캐릭터,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것 같은 캐릭터, 하지만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한번 조우하지 못하는 캐릭터. 미야 상은 파쿠 상을 만나기 두려워했던 걸까. 혼자 만나러 가긴 두려우니, 왜가리남과 같이 탑으로 향한다- 라던 한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다음은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했던 장면, 그리고 대사다.
파쿠 상과의 장면을 다 그리고 나서 미야 상은 "드디어 파쿠 상을 매장했어, 영화 속에.", 그리고 "죽여버렸어."라고 말했다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미친 은사가,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해줄 것인가- 를 스스로 생각해내야 하는 상황. 그 속에서 미야 상은 마음속 파쿠 상과 몇 시간이고 몇 주고 몇 년이고 대화를 나눴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자신의 그 "이게 아니야!"를 외쳐가며.
"예?"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짤. 나는 이런 미야자키 하야오의 엉뚱한 모먼트부터, 그가 덤덤하게 내뱉는 '인생이란 이런 것이겠죠-' 하는 장면들, '하, 안 풀려 안 풀려 안 풀린다고-' 하는 모습까지, 하나하나가 하나의 입체적인 창작중독자의 면면이라 느껴져 다 너무 좋다. 내 안의 '멋진 어른이란 이런 것이지-' 하는 기준에, 그 아이돌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추가되었다. 나는 늙어서도, 지위나, 명예나, 돈이나, 사회적 인식 같은 걸 다 사소하다고 생각하며, 내가 정말 몰두하고자 하는 것 하나에 온 정신을 바쳐 나 스스로 걸작이라 부를 만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꼭 결과를 만들지 않아도 좋다. 그 과정 자체에 푹 빠져들어, 죽을 때까지 이것만 하다 가도 좋아, 라고 부를 만한 의미있는 활동을 지속하는 할머니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할머니가 되어버리기 훨씬 이전부터 그런 삶을 지속해 나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고.
정말 귀찮아, 귀찮아.
하나를 끝내면 인생은 계속되고 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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