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살피는 일, 나는 지금 마음 속으로 무엇을 가장 간절히 원하고 있나?
한 마디로, 나를 아는 일. 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나를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맡겨둔 애인이라도 있는 것 마냥, 난 다 알아- 하는 투의 자만심을 툭툭 흘리며.
아니었다. 하하.. 나는 항상 디즈니 공주처럼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 왔다. Someday, little star⋯ 바로 의무가 일찍 끝나는 삶을 살겠다고.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종일 여기 갔다가, 이거 했다가, 이것까지 참석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느새 밤이 되어버리는, 내가 내 삶 속에 없는 나날들이 아니라, 아침에 무언가를 하고 나면, 아- 이제 다 했으니 오늘은 어딜 가서 무얼 하며 보내볼까, 기지개를 펴며 외칠 수 있는 삶. 그런데, 정작 나는 내가 원하는 것들에 우선순위도 매기지 못하는 바보였다.
하고 싶은 것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하나하나 순서를 지어 내 삶 앞에 일렬로 줄세우고 나면, 모든 걸 다 충족시키기엔 기회가,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선택의 벼랑으로 몰린다. 가치를 저울질하며 솎아내고, 골라내야 한다. 더이상 내가 해야 하니까, 내게 의무가 주어졌으니까, 응당 책임 소재가 있으니, 사무적으로 이거, 이거, 이거. 선택하고 쿨하게 걸어나갈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선택한 이유도 내 마음이고, 저것을 하고 싶은 이유도 바로 내 마음이다.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 광활하게 커다란 자유 앞에 놓여져 본 적이 있는가? 아니요. 나는 지금 이 역동적이면서도 동시에 겁먹을 정도로 조용한 가을을 앞두고 고뇌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괴로운 점은, 내가 이렇게 결정을 못하는 사람이었나 하는 것이다. 깔끔하고, 진취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당당히 선택해 추구해 나가는 나- 라는 자아가 깨져버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나는 원하는 것이 이렇게 일관되지 않은 사람이었나, 하는 의심도 들고, 내가 이걸 정말 원한다-라고 선택했을 때 정말 내가 그 결과에 만족할까? 무엇보다, "후회하지 않을끼?" 라는 생각이 내 혀를 옥죄는 것이다. 그렇게 결정을 엎길 몇십 번,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한답시고 계속 갈팡질팡하길 여러 낮밤. 순식간에 나는 줏대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 와중에 이 책의 작은 글귀가 내 귀에 속삭이는 말이 있었다. 대신 내 상황에 정답을 내려준 말은 아니지만,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다가오는 결정의 시간을 애써 외면하던 나를, 나의 불안한 마음을, 한층 가라앉혀준 말.
갑작스러운 결심에 대한 채점은 바로 이루어지지 않고,
새로운 날마다 내 결정을 의심하기 쉽다.
여기가 괜찮을까 싶어도
일단 내가 고른 이곳에서 오늘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마음에 든다는 말은,
무언가를 마음에 넣기 위해 활짝 열어둘 수 있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이 선택지가 마음에 들어. 라고 하기 전에, 무언가를 마음에 들일 공간도 전혀 없던 불쌍한 나에게. 좀더 나 자신을 위해주고, 가꾸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백예린의 The loved one과 같이 살고 싶다고 무던히도 외쳐 왔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 부드러울 수는 없었던 그 칼날 같이 단호했던 나날들이 아련히 지나간다. 열정이 식은 건가, 너무 빨리 늙어버린 걸까. 라고 좌절하기 이전에, 일단 다 제쳐두고, 나를 쉬게 해줘야 할 것 같다. 나에게 선물을 선사하고, 나에게 잠을 선물하고, 내가 용기내어 무언가를 진심으로 다시 원할 수 있게 되기까지 든든히 막내를 응원해주는 형누나마냥. 응, 그렇게.
그렇게, 나는 예전의 찰랑이고 반짝이는 눈빛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저자
- 김겨울, 김현민, 김혼비, 디에디트, 박서련, 박정민
- 출판
- 위즈덤하우스
- 출판일
- 202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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