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비가 오는 휴일이어서 어두운 커튼 장막 아래 낮잠을 길게 자 보았다. 그랬더니 꿈속에선, 내가 알던 이 사람 저 사람의 자살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슬슬, 이 책에 대한 글을 쓸 때가 되었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출간 2년 뒤 우리나라에서 『상실의 시대』 라는 제목 아래 번역서가 출간되기도 했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다소 동떨어진 보통명사들로 이루어진 제목이 주는 호기심 내지 은유적 느낌은 조금 포기하면서도, 역시 이 책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상실의 시대'가 조금 더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한다.
붙잡을 새도 없이 조용히 사그러드는 사람들.
이 작품 속에서만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아는가? (스포는 각자 주의.) 우선 소설의 극초반, 주인공의 어릴적의 친우였던 기즈키부터 시작해서, 미도리의 엄마, 나오코의 언니, 미도리의 아빠, 친한 선배의 애인이었던 하쓰미 씨, 그리고 마지막에 결국 나오코까지.
그리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도 모르게 불현듯 휙 사라져버린 룸메이트 '돌격대'까지.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그리웠다.
(p.85) 나는 매일 바닥을 쓸고, 3일에 한 번씩 창문을 닦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이불을 말렸다. 그리고 돌격대가 돌아와서 '와, 와타나베, 어쩐 일이야? 굉장히 깨끗하잖아' 하고 칭찬해주기를 기다렸다.
말은 좀 더듬어도 어렸을 적부터 지도를 만들겠다는 꾸준한 애정과 꿈을 가지고 이곳 대학교에 관련 전공으로 입학까지 해서, 열심히 규칙적인 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었을 지인데. 왜 어느날 갑자기 방을 빼버린 걸까? 그에 관해선, 주인공 '나'의 생각에서 몇 번씩 문득 '그가 있으면 즐거울 텐데'하고 회자되었을 뿐, 더는 아무 실마리도 남기지 못한 채 그에 대한 언급은 소설의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두렵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언젠가는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그들을 보는 순간이 있을 텐데, 정작 그 마지막 날의 마지막 순간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눈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
하지만 "대체 왜?"라는 질문은 비단 돌격대 한 사람에게만 국한시켜 던질 수는 없었다.
(p.120)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빠는 언니와 저에게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는 지금 몹시 억울하다. 나는 너희 엄마를 잃느니 차라리 너희 둘을 잃는 편이 낫다'라고. 저희는 어안이 벙벙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사랑하는 이를 잃는 상실감은 누구에게나 치명적이다.
(p.336) "시스템이니 책임이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결혼해서, 매일 밤 좋아하는 사람의 품에 안기고, 그 사람의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만족해요. 그것뿐이에요. 제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에요."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분명히 자신이 원하는 바를 꽤나 분명하게 알고 있었고, 소박하게나마 그 꿈의 형태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선연히 각자 그리고 있었는데, 분명 그랬는데. 알고보니 이때의 모습이 내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던가, 막 그래버린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상실'할 위기에 처했을 때, 역시 그 당사자의 서술이 가장 처절하고 비이성적인 법이다.
(p.381) 왜 이토록 아름다운 육체가 병들어야만 하는가, 하고 생각했다. 왜 그들은 나오코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것일까?
(p.382) 나는 커튼이 꼭 닫힌 방안에서 격렬하게 봄을 증오했다. 나는 봄이 나에게 가져다준 것을 증오했고, 또한 그것이 내 몸 속에서 빚어내는 둔감한 통증을 증오했다. 태어나서 이제까지, 이토록 강렬히 무언가를 증오한 적은 없었다.
나는 이 말을 읽고 굉장히 슬퍼졌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나'가 봄을 이토록 증오한다고 선언하기 바로 몇 페이지 전에서, 이 책에서 가장 사랑스럽다고 생각되는 사랑 고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진부하지 않은, 솔직한 표현을 좋아하는 미도리에게 와타나베는 이렇게 말해준다.
(p.360) "봄날의 곰만큼 좋아해."
"봄날의 들판을 미도리가 걷고 있을 때, 저편에서 비로드 같은 털에 눈빛이 또렷한 새끼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미도리에게 이렇게 말하지. '안녕하세요, 아가씨, 저와 함께 뒹굴며 놀지 않겠습니까?' 하고. 그래서 미도리와 새끼곰은 서로 부둥켜안고 토끼풀이 무성한 언덕의 비탈을 구르며 하루 종일 노는 거야. 그러면 멋지겠지?"
🌸
크으⋯ 와타나베, 그는 역시 문학도였다. 비단 자살이나 죽음이 아니더라도, 전체적으로 우중충하게,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듯한 일상 이야기가 지속되는 이 소설 속에서, 이 부분은 '봄날의 햇살같이' 숨통이 트이는 아름다운 구절이었다고 생각한다. 너와 내가 함께 있으면 우리는 그저 복실복실하고 부드럽게 부둥켜 안고 있기만 해도, 우리의 얼굴을 스치며 온 공기를 물들이는 풀향에 우리는 한껏 싱그러울 거라고.
헌데 그런 봄이, 와타나베의 표현을 빌리면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하기에 적당한 계절인' 봄이, 나오코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순식간에 혐오스러운 계절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와타나베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도 없이, 완전히 그의 손을 벗어난 일이었다. 그런 걸 수동적인 방식으로 '운명'이라 부르는 걸까? 결국 나오코의 죽음까지도, 그가 무엇을 어떻게 했다면 달라졌을까, 하는 가정은 성립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죄책감을 가질 수도 없이, 그저 "왜?"라는 공허한 질문밖에 던질 수 없는 처지. 그것이 남겨진 자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추스림의 방식이었다. 관련해서 이해에 참고할 수 있을 법한 구절이 있었다.
(p.457) 그리고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캐주얼티즈(casualties, 적절한 번역을 할 수 없다. 전투원의 감원이라고나 할까)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내 주위에서 죽어간, 혹은 사라져간 수많은 캐주얼티즈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정말로 이 소설에서 쓰고 싶었던 것은 연애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캐주얼티즈의 모습이며, 그 캐주얼티즈의 뒤에 남아서 존속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혹은 사물들의 모습이다. 성장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이 부분은 작가의 말에서 발췌해 왔다. 이 복잡미묘한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아마 이것이리라. 가랑비에 옷깃이 젖듯, 잔잔히 하지만 끊임없이, 그러한 '감원'들이 있어야 했던 이유까지. 그 일련의 일들을 긍정/부정 둘 중 어느 쪽으로 평가하든 간에, 와타나베는 일단 정말로 성장다운 성장을 했다. 아래 본문이 그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이다.
(p.384) 왜냐하면 나는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보다는 내가 강하기 때문이지. 나는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거야. 그리고 성숙해질 것이고, 어른이 될 거야.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야. 나는 이제까지 가능한 한 열일곱이나 열여덟 살에 머물러 있으려고 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난 이미 10대 소년이 아니라구. 나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 어이, 기즈키, 난 이미 너와 함께 지내던 시절의 내가 아니야. 나는 이미 스무 살이거든. 그리고 난 살아가기 위한 대가를 충분히 지불하지 않으면 안돼.
와타나베는 '도대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p.54)'던 그 자신에 비해서 어느새 훨씬 성숙해져 있었다.
그렇다, 그런 소설이었다.
거의 대부분이 잔잔하고, 하지만 씻을 수 없는 상실감과 우울감이 어렴풋이 깔려 있고, 드물게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구절들이 등장하는 소설.
그도 그럴게, 주인공과 가까운 주변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 잠깐잠깐 스치는 일회성 캐릭터들까지 모두다 비슷한 온도의 고민거리를 안고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남친이 바람난 현장을 목격해 버렸다며 아침 5시까지 친구와 술을 마시던 여자는, 그 길로 처음 만난 와타나베와 복수를 하려는 듯 잤다. 그녀는 와타나베와 자고 난 후 어떤 기분이었을까? 통쾌했을까? 남자친구의 부당한 행동에 대해 합당한 복수를 했다고 마음이 편해졌을까? 편해졌지 않았다면, 그녀는 대체 어떤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슬픔을 해소할 수 있었을까? 또다른 한 미대생 남성은 한때 사랑했던 여자친구가 결혼을 바라보며 미래를 계속 의논하는 와중에, 그녀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꺼낼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행해왔던 사랑의 관성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족쇄처럼 사람을 옭아매다니, 이보다 더 안타까울 수가 있을까.
모두가 다 부서지는 과자조각같은 사랑을 하고 있었다. 더는 온기도 없고, 푸석푸석한, 관계를.
마지막은 역시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싶어했는지, 그 강렬했던 끌림에 대해 설명해두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읽었던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 한 쟁취적인 일본인 여성 독자의 일화가 실려 있었다.
(p.7) 그녀는 저녁 나절부터 〈노르웨이의 숲〉을 읽기 시작하여 그대로 새벽까지 다 읽었다고 합니다. 도중에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고요.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었을 때, 남자 친구에게 꼭 안기고 싶어졌답니다. 하지만 시각은 새벽 네 시였고, 더구나 그녀의 남자 친구는 기숙사에 살고 있어, 찾아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더군요. 자전거인지 뭔지를 타고 그녀는 그가 살고 있는 기숙사까지 갔습니다. 그러고는 벽을 타고 기어 올라가(그의 방이 2층이었기 때문이죠), 창문을 똑똑 두드려 그를 깨우고, 방안으로 들어가, 그의 품에 꼭 안겼다고 합니다.
대체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까지의 여정이 어땠길래? 이 서문을 읽은 나는 그대로 벙찌고 말았고, 이런게 1987년도의 연애란 말인가, 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읽어볼수록 아주 뜨겁고, 또 그 순간에 충실한 느낌이 들어 순간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러워졌다. 그리고 그 열정을 나도 느끼고 말리라며, 시작부터 하나의 궁금증 내지 숙제를 안고 첫 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시간과 기회가 된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고, 이해에 기반한 공감보단 이 기분을 직접 느껴보길 추천한다. 아마 이 책을 덮고 나서, 그녀가 느꼈던 것은, 비록 내 추측일 뿐이지만, 내가 그랬듯, 지금 이 순간 확실하게 내 곁에 있어주는, 있어줄 수 있는 자의 온기에 대한 갈망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와타나베가 그랬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고, 편안히 죽은듯 잠들 수 있는, 스스로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환경 속에서.
(p.170) 잠을 잘 생각은 없었지만, 나는 나오코의 존재감 속에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부엌에는 나오코가 사용하는 식기가 있고, 욕실에는 나오코가 사용하는 칫솔이 있고, 침실에는 나오코가 자는 침대가 있었다. 나는 그러한 방안에서, 세포의 구석구석까지 피로감을 하나하나 닦아내듯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노르웨이의 숲 - 교보문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나기 위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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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책은 아주 야하다.
아주,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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